수사적 호명
미술 기관들이 온라인으로 유통시키는 글들은 긴 명사구, 전문 어휘, 분석적 동사 같은 학술적 글쓰기의 형식적 표지들을 채택하면서도, 그 표지들이 가리키는 논증적 작동은 수행하지 않는다. 이 연구는 이 구조적 간극을 네 개의 독립적 층위에서 측정하고, 그 수렴으로부터 ‘수사적 호명(rhetorical invocation)‘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한다.
왜 기관의 언어를 측정하는가
품질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분야에서, 경력은 증명 가능한 성과보다 제도적 네트워크와 상징자본에 의해 결정된다. 프라이베르거 등(Fraiberger et al., 2018)은 현대 미술계에서 이 조건을 실증했다: 고위 명성 기관으로의 조기 접근이 평생 경력을 어떤 질적 지표보다 강하게 예측한다. 이런 장(field)에서 권위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.
언어는 그 생산 수단 중 하나다. 룰과 레빈(Rule & Levine, 2012)은 국제 미술 영어(International Art English, IAE)를 하나의 일관된 언어 사용역(register)으로 식별했다. 소로(Soro, 2021)는 온라인 미술 잡지에서 이 어휘가 담론적 수행(discursive performance)을 통해 어떻게 상징적 가치를 구축하는지 보여주었다. 이 연구들은 공통된 구조적 조건을 가리킨다: 검증 가능한 질이 부재한 장에서, 언어는 분석적 권위를 수행해야 한다.
그러나 이 수행의 구조적 특성을 규모 있게 측정한 연구는 없었다. 이 논문은 그 공백을 메운다.
무엇을 측정했는가
연구는 《Artforum》, 《e-flux》, 《Mousse Magazine》, Tate, Stedelijk 미술관 등 13개 주요 현대 미술 기관의 2010-2025년 영문 디지털 출판물 약 62,400건을 분석한다. 비교 기준은 DOAJ(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s)에서 표집한 1,673건의 동료심사 학술 논문이다.
분석은 세 개의 표준화된 어휘 도구로 작동한다: (1) 기관 글쓰기와 학술 담론이 공유하는 530개의 담론 키워드, (2) 라틴·그리스계 접미사(-ic, -al, -ive 등)로 학술적 형용사를 분리하는 필터, (3) 인과·대조 접속사 목록. 이 도구들 위에서 네 개의 독립적 측정 층위가 작동한다.
Layer I: 구문적 골격은 갖추고 있다
학술적 글쓰기의 구조적 특징은 후치 수식(post-nominal modification)의 밀도다. 전치 수식이 아니라, 명사 뒤에서 의미를 압축하는 구조가 학술 산문의 해부학적 골격이다. 기관 텍스트는 문서 길이를 통제했을 때 이 후치 수식 밀도에서 학술 논문과 통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(보정 d = -0.12). 형식적 골격은 채택되어 있다.
이 발견은 이후 층위들의 해석에 중요하다: 구문 복잡도 자체가 논증적 연결사의 밀도와 무관하다는 사실(rho = -0.009, 유의미하지 않음)이 Layer I에서 이미 확인된다. 복잡한 문장은 논증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.
Layer II: 형용사는 반복되지 않는다
두 사용역이 동일한 담론 어휘를 사용할 때, 그 어휘를 수식하는 학술적 형용사는 어떤 방식으로 분포하는가?
정규화 수식어 연어 엔트로피(normalized Modifier Collocation Entropy, nMCE)는 한 문서 안에서 IAE 형용사-명사 쌍이 얼마나 반복되는지를 측정한다. nMCE가 1.0이면 모든 쌍이 단 한 번만 나타난다는 뜻이고, 0.0에 가까우면 동일한 쌍이 반복적으로 출현한다는 뜻이다. 다시 말해, 용어가 개념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.
기관 텍스트의 평균 nMCE는 0.972다(d = +2.00). 학술 논문은 0.866. 기관 글쓰기 안에서 social, cultural, political, critical 같은 형용사들은 매번 새로운 명사와 한 번씩 결합할 뿐, 같은 명사 파트너에게 돌아오지 않는다. 학술 논문에서 social이 capital, movement, structure와 반복적으로 결합하며 개념적 일관성을 구축하는 것과 정반대의 패턴이다.
이 불변성은 13개 기관 모두에서, 그리고 가장 분석적인 콘텐츠 유형(예: tate/research, d = +1.07)에서도 유지된다. 이는 한 기관의 편집 방침으로 설명될 수 없는, 장 차원의 구조적 속성이다.
Layer III: 논증은 따라오지 않는다
담론 키워드는 명시적 인과·대조 접속사 없이 출현할 수 있다. 담론 표지 상호작용(Discourse Marker Interaction, DMI)은 각 키워드의 구문론적 근방(의존 문법 거리 4 이내)에 because, therefore, thus, however, although 같은 명시적 논증 표지가 존재하는 비율을 측정한다.
기관 문서의 60.1%에서, 모든 담론 키워드가 논증적 접속사 없이 등장한다. 학술 논문에서는 이 비율이 20.0%에 불과하다(OR = 5.48). 기관 텍스트는 담론 키워드를 논증 없이 배치할 확률이 5.5배 높다. 분석적 콘텐츠로 한정해도 DMI는 학술 기준의 절반 이하다. 이론적으로 밀도 높은 e-flux/journal조차 보수적 DMI는 0.014로, 몇 기관의 홍보성 콘텐츠보다 낮다.
Layer IV: 확률 질량은 기술에 머문다
앞선 세 층위가 텍스트의 형식적 속성을 측정했다면, 마지막 층위는 의미론적 깊이를 측정한다. 언어모델이 생성형 평가를 내리게 하면 표면적 문체에 반응하는 후광 효과(halo effect) 때문에 두 사용역을 신뢰성 있게 판별할 수 없다. 이 연구는 모델에게 글에 대한 평가를 출력하도록 하지 않는다. 대신 6단계 서열 척도 위에 확률 질량이 어디에 집중되는지를 측정한다.
분석적 경향(Analytical Tendency, AT)은 L4(분석적)와 L5(이론적)에 할당된 로그확률의 합이다. 두 개의 독립적 모델(Llama-3.3-70B, Qwen-2.5-72B) 모두 기관 텍스트의 확률 질량이 L3(문맥적 기술)에 집중되고, 학술 논문은 L4(분석)에 집중된다고 판정한다. 기관 텍스트의 AT는 학술 기준의 3.5배 낮다. 이 격차는 보수적 추정치다. 인간 평가자와의 비교에서, 모델은 낮은 관여도에서 텍스트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으며, 이는 기관 코퍼스의 실제 AT가 더 낮을 가능성을 시사한다.
수렴, 그리고 수사적 호명
네 개의 층위는 독립적이다. 어느 쌍도 |rho| > 0.30을 넘지 않는다. 그러나 모든 층위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:
기관 텍스트는 학술적 글쓰기의 구문적 골격을 채택한다. 그 골격 안에서, IAE 형용사는 문서 내 반복 쌍을 형성하지 않는다. 담론 키워드는 명시적 논증 표지 없이 배치된다. 의미론적 깊이의 확률 질량은 분석이 아닌 기술에 머문다.
이 수렴이 정의하는 패턴을 수사적 호명(rhetorical invocation) 이라 부른다: 엄밀함의 형식적 표지들을 배치하되, 그 표지들이 학술적 글쓰기에서 떠받치는 논증적·의미론적 작동으로부터는 구조적으로 분리된 담론 수행.
측정 체계는 미술 특유의 가정에 의존하지 않는다. NP 구문 복잡도, nMCE, DMI, AT라는 네 개의 측정값은 모두 분석 대상 코퍼스에 대해 정의된 키워드 집합만 있다면 어떤 제도적 언어 코퍼스에도 적용 가능하다. 정치 기관 담론(의회 보고서, 정당 정책 문서, 전문가 자문 성명)에 이 체계를 적용했을 때 동일한 구조적 패턴이 관찰될지는 열린 경험적 물음으로 남아 있다.
논문 원문은 영어 프리프린트로 공개되어 있다: doi.org/10.31235/osf.io/4au72_v2
분석 코드 및 데이터: github.com/oudeis01/rhetorical_invocation